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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초량아카이브展

기간 : 2022520() ~ 529() 

장소 : 한성1918 부산생활문화센터(부산광역시 중구 백산길 13)

참여 작가

- 스토리랩 : 김대성, 김비, 박서련, 박솔뫼, 이정임, 한정현

- 사운드랩 : 김일두, 김프로, 정만영

- 이미지랩 : 김덕희, 김지곤, 지알원

- 하이브리드랩 : 박연정

: 김선영

사진 : 김기석



초량의 어원을 따라 예술 작업을 잇기

 

오랜 과거, 초량(草梁)의 섬과 뭍을 잇는다는 의미로 영도를 포함한 부산 원도심의 해안가를 부르는 지명이었다. 섬과 뭍을 잇고 왜와 조선을 이은 공간이자 근대에는 외국과 부산을, 사람과 사람, 물자와 곡식 그리고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한 곳. 부산의 사회, 문화,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한 셈이다. 게다가 초량은 부산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던 ()도심이자 피난민들이 가장 모였던 기다림과 생활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부 땅의 매립으로 도시와 산업지를 형성했고 여전히 북항 재개발을 통해 매립이 진행 중인 곳이다. 북적이는 도시 속의 활기와 삶의 고단함, 여러 문화의 복잡함이 존재하는 곳. 이러한 초량을 두고 공공예술 프로젝트 <신초량아카이브>는 초량의 역사와 기억을 예술 작업으로써 이어보고자 했다.

 

근대 건축물인 중앙동 한성1918 생활문화센터에서 2022520일부터 529일까지 10일간 <신초량아카이브>이 개최됐다. 전시는 참여작가들의 작품과 그 과정에 대한 아카이브 그리고 공연과 작가와의 토크 및 시민참여 프로그램 등이 구성되었다. 갈색과 노란색, 녹색과 파란색 등 각 장르를 대표하는 다양한 색과 도형처럼 프로젝트에는 문학가들이 모인 스토리랩, 소리와 음악 장르의 사운드랩, 시각예술의 이미지랩, 무용 및 공연의 하이브리드랩이 있고, 이들의 작업이 모여 하나의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전시는 1층 입구 아트라운지부터 곧바로 시작된다왼쪽 벽면을 둘러싼 <신초량아카이브사업 소개와 간략한 초량의 역사 그리고 1905년 경부선 기공식 때의 초량역과 백의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 60년대 수도시설이 지어지기 전 고지대의 급수풍경과 판자촌의 형성 모습아케이드가 없던 옛날 초량시장의 모습 그리고 부산역 큰화재 이야기 등을 천천히 훑어볼 수 있다공간의 중앙에 놓인 나무 팰릿 위에는 참여작가 인터뷰작가 워크숍 등의 기록들이 비치되어 열람할 수 있고다른 나무 팰릿은 스토리랩의 책자가 놓여있다스토리랩의 시민참여 프로그램인 ()-()한 아카이브는 시민들이 참여작가와 함께 초량을 걷고느낀 것을 각자 에세이사진그림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 아카이브 책자와 스토리랩 다섯 작가들의 단편소설집인 <안으며 업힌>이 비치되어 있다빨간 표지가 포인트인 소설의 이야기를 한편에 두고원도심 일대를 걸었던 시민들의 이야기와 시선은 아직 미지의 세계인 초량을 가늠하게끔 했다특히이정임 작가의 이 동네를 걷는 건 모르는 사람의 이바구(이야기)’를 마주칠 확률을 높이는 일이다.”라는 문장처럼 아카이브 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초량을 걸으며 작가들의 이바구를 만날 준비를 서서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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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 상상

 

글이 주된 읽기 방식이었던 입구 아트라운지를 지나, 비교적 어둡고 넓은 공간의 청자홀은 초량: 혼종의 공간을 주제로 하는 만큼 다양한 소리가 교차하는 신초량을 만들고 있다. 다만 사운드의 중첩으로 감상하기가 다소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사운드랩의 김프로, 김일두 작가의 <마도로스 믹스테입>, 정만영 작가의 <소리와 도시의 상상> 그리고 스토리랩의 <안으며 업힌> 속 일부 텍스트 설치작품과 사운드, 영상 협업 작업이다.

 

먼저 청자홀의 계단을 내려오면 <안으며 업힌>의 단편소설 속 일부 텍스트가 투명한 막에 각각 프린트되어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내려져 있다. 어두운 조명과 소리로 인해 막에 프린트된 글을 모두 엿보기란 쉽지 않지만, 몇 단어와 문장, 문단이 쌓인 형태를 점점 물러나 보면서 글로 지어진 어떤 의 형태를 생각했다. 전구 하나만 빛나고 있는, 비워진 방이지만 그렇기에 빈방은 독자의 상상으로, 소설 속 여러 장면들로 채워지지 않을까. 소설집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텍스트는 이곳의 을 통해 독자와 소설을, 초량을 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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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에는 대조적으로 검은 주름관이 벽을 가득 채운다. 바깥의 소리를 흡수한 거대한 관이 천정을 타고 바닥까지 뻗어있다. 관 앞에는 부산 형태의 나무 책상이 있고, 책상의 스펀지 위에 놓인 동그란 단자를 --’대는 원 위에 올려두자 초시간 단위의 종소리(김나영)와 뱃고동 소리(강은경) 등이 울려 퍼진다. <소리와 도시의 상상>은 정만영 작가가 시민들과 원도심(초량 시장, 산복도로, 부산항, 부평시장 등)에서 채집한 소리로 제작한 사운드 설치작품이다. 도심에서 쉽게 듣기 어려운 뱃고동 소리, 얼핏 기찻길을 상상했지만 초량 동네에 울렸던 교회의 종소리 등. 생생한 소리로 초량을 아카이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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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옆의 모니터는 영도 물양장을 실시간 스트리밍하는데 좁은 해안을 끼고 건너편 뭍에는 영도다리와 롯데백화점, 용두산 타워, 자갈치시장이 늘어서 있다. 영도의 일부 장면과 소리를 듣지만 바다 건너 보이는 남포동과 중앙동의 대표적인 건물들을 보며, 그곳에 울리는 북적이는 소리 또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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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로스 믹스테입> 부스는 LP판과 함께 턴테이블이 올려져 있지만, 실제 각각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헤드폰이 마련되어 있다. 정면의 큰 스크린에는 김프로, 김일두 작가의 뮤직비디오가 재생된다. 공사 중인 여객터미널 뒤편, 70년대 풍의 양복을 입은 김일두 작가가 들뜬 모습으로 울타리를 넘어 다니며 항구를 둘러보고, 걷다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끝나는 <마도로스 여인>의 뮤비. 망망대해에서 뭍으로, 다시 바다로, 인생 사는 것 모두가 마도로스가 될 수 있지 않느냐던 한 뮤지션의 말을 떠올리면서 마도로스의 기대와 그리운 정서를 뮤비의 등장인물에 대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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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본 초량

 

2층 교육실은 김덕희, 지알원 두 작가의 작업이 지도를 키워드로 전시된다. 공간의 양 가벽을 사용해 왼쪽의 벽은 김덕희 작가의 <신초량도시언어지도>, 가운데는 <메타초량스트리트맵>의 책자와 영상, 오른쪽 벽은 지알원의 <초량스냅>이 배치되어 있다. 김덕희 작가는 지도 위에 언어와 약도를, 지알원 작가는 과거의 장면을 그림으로 재현해 스냅 사진을 위치시켰다.

찾아가기 위한 지도가 아닌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좌표 모음이자 사람과 지역, 시대를 찾아보는 지도라는 설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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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덕희 작가의 <초량-도시언어지도>는 도심 일대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수집해 언어지도를 완성했다. 가령, “여기서 먹을거야? 어쩔거야?”라는 현재적 상황 속에서 시장에 즐비한 길거리 음식과 관광을 유추해보기도 하고, “나도 이제 좀 나아지겠지 이런 기대를 가지고 산다는 미래의 낙관을 바라는 말에서 그동안의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나 생계의 고단함을 떠올려 보기도, “육만 원씩 곱하기 사하면 이십사만 원 아니가하는 실제 일터에서 주고받는 말들 등. 대표적인 지형지물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말을 통해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노동과 여가, 삶이 있는 지역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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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다르게 <메타초량스트리트맵>은 시민참여 프로그램 도시 감각 드로잉에서 주민들의 약도를 수집해 영상과 대형 책자로 아카이브했다. 네 동네(남포동, 중앙동, 영주동, 초량동)의 약도는 저마다의 기억과 그림체로 이어져 있는데 가령, 도로/인도, 직선/폭이 있는 도로, 한 블록에 밀집된 상호들/띄엄띄엄 표시된 가게 등 그린 이의 기억과 애정 어린 공간들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김덕희 작가의 지도는 이제 일상화된 스마트폰의 지도앱처럼 01의 데이터로 치환된 직선의 길이 아닌 구불한 곡선을 따라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우리의 기억이 직선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우연히, 불현듯 찾아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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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알원 작가는 초량과 관련한 과거 신문 기사와 주민들이 제공한 사진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흑백의 그림으로 재현했다. 그림은 초량의 빈 공간에 붙여졌고, 또 주변 공간과 함께 사진에 담겨있다. 작가는 빈 공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그려온 그림을 벽에 붙이는 방식의 페이스트 업(paste up)’ 기법을 선택했다. 사람이 머물지 않는 빈 공간에 슬며시 자리한 그림은 때로는 주민자율게시판과 같이 자연스레 공간을 채우고 있고, “주의! CCTV 녹화중이란 표지판이 있는 공간에는 전단지를 붙이는 사람의 그림이 붙여져 거리예술 특유의 재치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전시장 한편에는 초량동 일대에 붙여진 20여 개의 그림을 직접 찾아가볼 수 있도록 <초량스냅지도>가 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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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화가 피었습니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 3층에 다다르면 다소 희미하게 프린트된 보라색과 노란색의 꽃이 있다. 김지곤 감독의 다큐멘터리 <초월>의 서정적인 느낌을 암시하는 듯하다. 큰 스크린 앞에는 마른 꽃과 풀이 있었는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꽃과 나뭇잎을 주워와 올려둔 것이었다. 매 정각 시작하는 영화는 37분의 러닝타임이었는데, 다시 상영되는 잠깐의 시간 동안 영화의 주제를 떠올려 보도록, 또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영화의 여운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초월>은 저마다의 이유로 가게 앞에 화분을 둔 사장님들이 등장한다. 가게를 돋보이게 하려고, 안을 가리려고, 지인이 화분을 주어서, 지나가는 사람도 잠시의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 등의 이유이다. 작은 동기에서 시작한 식물이 어느새 문턱 정원이 되었고, 다양한 종들의 식물을 만나 마음을 주고받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함부로 대할지 모를 식물이지만 오랜 시간 가꿔온 이들은 그 속에서 마음을 돌보고, 자신만이 아닌 주변까지도 생각한다. 가끔 화분을 도둑맞거나 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상실감과 슬픔이 반복되기도 하지만 가꾸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싹이 다시 자라나듯반복되는 돌봄과 그 주변에는 끈끈한 힘이 존재한다영화를 보고 난 뒤 동네의 주택과 가게 앞에 놓인 화분에 애써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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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팝댄스컴퍼니의 공연, <초량캬바레>는 그동안의 전시 관람과는 반대로 3층 옥상 정원에서 시작해 1층의 청자홀로 내려가는 순서였다. 시작과 함께 사회자는 관객들에게 초량화씨앗을 나눠줬고, 박연정 작가의 독무로 공연의 첫 움직임이 시작됐다. 바닥에 깔린 흙더미 위, 고군분투하던 씨앗과 같이 고된 움직임을 펼치던 박연정 작가의 무대가 끝나고 출연자의 안내로 관객은 아래로 이동했다. 지나는 길목에서는 <초월>의 이미지를 희미하게 간직하면서 2층으로, 다시 1층으로 계단을 타고.

지하에 도착하면 신초량아카이브의 여러 작업과 만나며 희비(喜悲)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김일두 작가를 대신한 공연과 이어 반대편 스토리랩의 을 공간으로 펼쳐진 느린 템포의 움직임. 소설로 둘러쌓인 에서는 내면의 정서를 담고 있는 듯, 다른 자아와 만나는 듯 움직임과 멈춤을 반복한다. 이후에도 김덕희 작가가 수집한 사투리의 쾌활함, ‘()’처럼 울돌목의 거센 바다 물결을 배경으로 하는 움직임, 마지막으로는 김프로 작가의 음악에 맞춰 모두 함께 박수를 치며 막을 내리기까지. 느슨함과 힘차고 빠른 움직임의 반복 속에서 어느새 씨앗이 자라 초량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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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전시는 시각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 무용 등의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으로 지역의 움직임과 정서를 아카이브하고 있다. 몇 년간의 감염병으로 인해 얼어붙었던 사회적 분위기와 강추위가 지나 봄이 되는 때. 한 차례의 공공예술 사업이었지만 예술가의 시선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글 / 김선영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문화와영상매체 협동과정 석사과정 재학중

지금은 전시 기획,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자 한다.